이화여자대학교 EWHA WOMANS UNIVERSITY이화여자대학교 EWHA WOMANS UNIVERSITY

해외봉사

2012 여름 해외교육봉사_캄보디아_하영은

  • 작성일 : 2013-04-01
  • 조회수 : 739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이화향기 가득한 캄보디아

 

불어불문학과 11학번 하영은

 

           나는 이화봉사단 해외 교육봉사 삼수생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대학 입학 이래로 모집할 때마다 이화봉사단을 신청했건만 번번이 낙방하고 세 번째 도전 만에 합격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과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봉사단 준비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치밀하고 힘들었다. 3개월간의 대장정이 끝난 지금, 내가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존재였냐며 누군가 질문한다면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우리 봉사팀 단원들은 누구 하나 빼지 않고 하나하나 열심히 했고, 나로 하여금 항상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우리 봉사단을 움직이는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헌신적으로 열심히 했고, 그 모습을 보며 다른 이들도 따라 열심히 했기에 캄보디아에서 교육봉사를 하는 내내 지도교수님과 센터 장 선생님들께 그토록 많은 칭찬과 격려를 들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봉사 준비기간 동안, 우리의 일상은 만남과 헤어짐의 촘촘함 경계였다. 학기 중에도 거의 매일같이 온, 오프라인으로 만나 서로의 교안과 스터디 내용을 피드백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했고, 방학이 시작한 이후에는 모든 개인적 일정을 취소하고 이화봉사단에 시간을 투자했다. 아침 8시에 만나 저녁 9, 10시에 헤어지며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려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와 같이 교안의 아주 상세한 부분까지 치밀하게 준비했다. 준비과정은 물론 힘들었다. 특히, 아침잠이 많은데다가 고속버스를 타고 통학까지 해야 하는 나는 항상 지각과 잠, 멀미와의 싸움에 고군분투 해야 했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열심히 하면서도, 나의 조건에 토닥토닥 위로를 해 주는 우리 멤버들을 보며 미안한 마음에 부족한 나의 능력은 공연연습, 과자나 음료수와 같은 간식, 항상 맨 나중에 집에 가는 것과 같이 사소하게나마 보충하려고 노력했다.  거의 한달 이상을 이렇게 서로 얼굴을 맞대며 일한 덕분에, 우리는 굉장히 빠른 기간에 급속도로 친해졌다. 심지어 부모님보다 더 자주 보며, 학교에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었다. 집은 그저 씻고 자는 장소에 불과했다. 우리의 이런 노력은 서로에 대한 애정과 팀워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애정과 팀워크는 캄보디아 현지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숙소에서 생활하는 데 윤활유가 되어, 우리 공동체가 무리 없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도왔다.

           캄보디아에서의 생활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우리 팀원 모두가 현지인 같았고, 수업 진행이나 관광할 때의 태도 모두가 자연스러웠다. 짐작하건대, 출발 전에 다같이 수십 번이고 교안을 읽어보고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자고 약속하고 또 약속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상호작용을 할 때도, 비록 몇 가지 말을 알아가긴 했지만 그 아이들과 의사소통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캄보디아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마치 바벨탑 이전의 사람들처럼, 아이들과 의사소통 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이는 우리를 애정으로 대해주는 아이들의 도움이 컸다. 뭐든 당연시 여기고, 다른 이의 물건이나 감정에 크게 개의치 않는 우리와 달리, 캄보디아의 아이들은 작은 일 하나에도 어꾼쯔란하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천사들이었다. 어쩌면 그 아이들에게 천사라는 칭호조차 부족할지도 모른다. 내가 실수하면 오히려 그 아이들이 미안해 했고, 교안 중에 남은 미술재료를 가지고 서로 달려들어 반지며 팔찌를 만들어주었기에 수업이 끝나면 항상 얼굴은 스티커로 알록달록 하고, 손에는 온통 색색의 끈들이 매달려 몸도 마음도 화려하고 행복했다. 덥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우리 중 어느 하나 크게 다치지 않고 잘 끝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아이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더 잘 할 수 있었는데도 잘 못한 일이 많아 후회가 많다. 그 중 하나는 교안 마지막 날 눈물을 보인 일이다. 아이들과 헤어질 때, 울지 않으려고 약속했고 또 다짐했지만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어 몰래 팀원들 몇 명과 버스를 등지고 서서 몰래 울어버렸다. 혹시나 내 눈물을 본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일이지만, 서로 울지 말자고 약속한 팀원들과 센터 장 선생님께 무엇보다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또 하나 후회되는 일은 건강관리를 잘 하지 못해 아팠던 일이다. 주말에 앙코르와트 관광을 하고 씨엠립의 한 뷔페를 들렀는데, 음식 향이 너무 강해 평소와 다르게 많이 먹지 못하고는 얼음을 넣은 아이스티만 연거푸 마셔댔다. 그러나 그 일이 원인이 되어, 식중독 류의 현지 풍토병에 걸려버렸다. 설사와 고열, 두통, 몸살, 구토를 동반한 상상 초월의 고통은 근 10년간 병원 한번 가지 않는 나를 무너뜨렸다. 이 때문에 교안에는 참여하지도 못하고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밥만큼이나 많은 약을 먹어야 했다. 금방 낫기는 했지만, 그 날 하기로 했던 교안이 내가 기획했던 교안이었고, 간식 조달이나 교안 설명 등 해야 할 일도 많았는데 하필 그날 아파서 너무 서럽고 팀원들한테도 미안했다.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타지에서 아픈 설움과 팀원들, 아이들 생각에게 미안한 생각에 울어버린 일을 지켜본 리더 언니는 그 일을 회자하며 놀리지만, 난 정말 중학교 때 예고에 못 가게 된 이래로 그렇게 운 건 처음이었다.

           이화봉사단 해외 교육봉사팀에 참여한 일은 내 대학생활에서 가장 잘한 일 Top3에 꼽힐 정도로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소감문을 쓰는 이 순간도 그곳과 그곳에서의 생활이 미칠 듯 그립지만, 내 남은 인생에서도 그곳에서의 행복한 기억들은 향기로 남아 두고두고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와 함께해준 이화봉사단 L.O.V.E, 언어 팀, 모빌 만들기 팀, 공연 팀, 룸메이트 언니들, B, 메이트 등 다양한 이름으로 함께한 우리 19명의 능력자들에게 너무 고마울 뿐이다. 훗날 이 멤버들과 다시 캄보디아에 가서 다시 그 숙소에 머물며 앙코르 맥주 한잔 기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