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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

2012 여름 해외교육봉사_캄보디아_박승리

  • 작성일 : 2013-04-01
  • 조회수 : 641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2012 이화여자대학교 캄보디아 해외봉사 소감문

 

통계학과 11학번 박승

 

           눈 깜짝 하고 나니 이렇게 해외봉사를 다녀와 소감문을 쓰게 되었다. 1학기 중순부터 면접을 보고 서로 어색한 사이에서 지속적인 회의를 하며 점점 정도 들고 빨리 기말고사 끝나고 본격적인 준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방학을 하고 우리는 일주일간은 6시 반부터 모여 회의를 가지기도 했었다. 친구들은 왜 이렇게 빨리 모이냐며 학교 다니는거 보다 더 빨리 모인다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했었지만 방학을 하자마자 좋은 사람들과 매일아침을 함께하고 우리가 가르칠 아이들을 위해 서로 열의 있게 토의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사실 나는 봉사를 한 경험도 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쓴 교안이나 회의록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보면 정말 부족한 점이 많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또 리더 언니와 부리더 언니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한명한명 토닥거리며 챙겨주기도 하고 열심히 하는 친구에게는 더욱 격려를 해주었다. 이번기회를 통해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나도 이렇게 노력하는 리더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봉사는 모든 프로그램이 짜진 상태에서 내가 조금 수정하고 그냥 참여하는 형식의 봉사였다. 그런데 이화봉사단은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었다. 이전의 해외봉사단의 기록들을 참고하되 우리가 가는 센터에 맞게 또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교안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했다. 처음에 100개의 교안을 만들고 그중 엄선하고 엄선하여 5개의 교안으로 줄이고 정말 사소한 돌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글로서 남겨 아이들에게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밤낮없이 봉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후원받을만한 시장을 조사하고 동네별로 담당하여 가게마다 직접 들어가서 후원을 요청했다. 가게에 들어 서기전에 어떻게 후원을 해달라고 말할지 수십 번 연습해보고 가게에 들어섰지만 말문이 트이지 않았고 엄청 떨렸다. 처음가게에서 거절을 당하고 후원을 해줄 수 없다고 하셨을 때 그 막막함은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가게에 들어가기가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또다시 심호흡을 하고 가게에 들어서고 색종이, 문구세트, 연필, 지우개 등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들은 후원해주 셨다. 아이들이 이것을 받아 좀 더 좋은 재료와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후원해주시는 분이 성적에 들어 가냐며 본인들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기뻐하냐고 궁금해 하셨다. 그분에게 내가 진심으로 내일같이 기뻐한다고 받아들여 진거 같아 좋았다.

           우리가 준비한 재료를 날짜, 장소, 주제별로 정리하고 또 한 상자 당 무게를 배분하려다 보니 거의 일주일 동안 짐을 포장했다. 그냥 있는 거 다 싸 가면 되지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철저 하게 준비하다 보니 캄보디아에 가서 우왕좌왕하며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지 않고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되었던 거 같다.

           캄보디아에 도착한 첫날은 숙소에서 쉬고 그 다음날 센터에서 오티를 하고 다음날부터 진행될 교안을 준비를 했다. 한국에서 생각만 하던 센터를 처음 보니 엄청 떨리고 아이들을 빨리 보고 싶었다. 이때는 아이들이 몇 명이 올지, 어린아이들이라고 했지만 몇 살이 최대일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다음날 우리가 아침부터 센터에 가서 준비를 했었는데 아이들은 8시 반부터 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보니 우리는 모두 흥분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은 안통하고 우리가 준비했던 서로서로 안마하기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다른 대책이 필요했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하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와 ‘동대문을 열어라’를 같이 했다. 그 후 조별로 아이들을 나누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처음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프로그램에는 잘 참여하고 나에게 관심은 있었지만 먼가 함께 한다는 느낌은 잘 못 받았다.

           또 센터의 아이들은 센터 선생님과는 안고 장난치고 했었는데 내와는 그런 장난도 안치고 그냥 배시시 웃기만 하는 것이 아쉬웠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가면서 아이들이 먼저 와서 인사 하고 장난도 치고 했다. 특히 친구와 둘만의 게임이던 딱지치기에 나를 끼워 함께 게임하는 것에 난 감동은 받았다. 또 캄보디아의 세세세 같은 놀이를 가르쳐 줘서 나와 함께 하려했다. 서로 나라의 놀이를 가르쳐 주고 함께 하고 그 뜻은 몰라도 말을 흉내 내며 같이 하려고 하는 것에서 역시 마음이 통하면 언어는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6일째 축제와 버튼마켓이 있는 날 아이들이 우리가 준비한 물건을 지금까지 열심히 얻은 버튼으로 사고 이벤트에 참여를 하고 공연으로 끝냈다. 아이들이 햄버거와 가족사진을 찍고 돌아 갈 때, 내가 담당한 아이들이 와서 꼭 안아주고 아쉬워하며 돌아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찡했다. 내일부터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이고 슬픈 일이 아니기에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또 아이들 부모님이 너무 감사하다고 하며 안아 주셨다. 어머니의 그 마음이 느껴졌다. 어머니들은 그간 아이들이 만든 작품을 보시고 뿌듯해 하시는 거 같았다. 아이들이 이번 경험을 계기로 센터를 접해보고 또 꿈을 찾고 그 꿈을 향해 노력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봉사와 일정을 모두 끝내고 센터의 선생님들과 인솔해주신 선생님, 교수님이 우리를 칭찬해주시고 우리의 노력을 알아주셔서 그간의 고생들이 정말 값진 것이 되었다. 이번 해외봉사를 통해 봉사를 하는 마음가짐과 준비하는 과정 또 아이들을 만날 때의 태도 등 전반적인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해서 더욱 좋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