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EWHA WOMANS UNIVERSITY이화여자대학교 EWHA WOMANS UNIVERSITY

해외봉사

2012 여름 해외교육봉사_캄보디아_두가현

  • 작성일 : 2013-04-01
  • 조회수 : 885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봉사, 어디까지 해봤니?

 

영어영문학과 11학번 두가현

 

           한국에서의 2 개월과 캄보디아에서의 2주는 나에게 있어서 큰 축복이었다. 이화봉사단은 내가 한국과 캄보디아에서 다양한 인연을 맺도록 도와주었고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해주었다. 이화봉사단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여름방학은 아마 잉여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이화봉사단 해외교육봉사 내에서는 3개월간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우선 첫 워크숍 때의 만남을 잊을 수가 없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이화봉사단에 뽑혔다는 사실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는 사실에 모두 설렘 반 긴장 반의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들 부끄럽게 자기소개를 하였고 어색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깨졌다. 다들 봉사 경험도 어느 정도 있었고 별로 없다 하더라도 봉사에 대한 열정만은 뜨거웠다. 그렇게 우리들의 밤도 봉사 준비로 훨훨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5월부터 봉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캄보디아로 출발하기 전까지 10주 정도의 준비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워크숍때 기획팀, 홍보팀, 물품팀 그리고 공연팀으로 나누어 첫 준비를 시작하였다. 각자 본인이 속한 팀에서 열심히 활동하였고, 방학 동안엔 서로 서로 도우며 모든 준비를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묶어나갔다.

           여태까지 해왔던 봉사활동은 단체 또는 선생님들이 틀을 짜준 봉사였다. 교내 봉사든 공식적인 봉사든 모두 하라는 대로 수동적으로 했을 뿐이다. 나는 봉사를 했다 라고는 말은 할 순 있지만 큰 보람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나로 인해 대상자의 삶의 질이 개선되었는지, 나의 봉사로 인해 행복감을 느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화봉사단은 달랐다. 아무것도 준비돼있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부터 우리 봉사단원 20명이 차곡차곡 준비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교안도 100개씩 만들고 모든 변수에 대한 대비를 하려고만 했다. 결국 5개의 교안으로 최종 'FIX' 되었지만 우리는 5개의 교안을 모든 면에서 최대한 철저하게 준비를 하였다. 덕분에 우리는 캄보디아에서 준비물 또는 역할 면에선 큰 문제는 없었고 시간이 남을 때에도 부과적인 활동을 마련하여 실행하는 기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10주간의 준비는 행복하기도 하였지만 20명의 여자들이 모인 만큼, 그리고 의견을 많이 나눈 만큼 약간의 오해도 생겼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다툼도 오히려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0명은 모두 같을 순 없다. 나와 아주 잘 맞는다고 생각하여도 적어도 한 면에서는 상대방은 나와 다른 의견을 보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충돌은 곧 배움과 성장을 뜻한다. 남들과 나의 다른 면을 발견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착오와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봉사를 통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준비 과정에서 같은 봉사단원들에게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캄보디아로 향했다. 캄보디아에 도착하여 밖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숨이 막혔다. 설렘으로 인한 숨 막힘이 아닌 더운 날씨와 높은 습도로 인한 막힘이었다. 거기엔 센터의 주성아 선생님과 조유영 선생님 그리고 독도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계셨다. 이분들의 밝은 미소를 보니 순간 더위는 잊혀졌고 실감이 나기 시작하였다.

           캄보디아의 역사는 우리나라 역사 못지않게 슬프고 안타까웠다. 우리는 봉사를 하기 전날 캄보디아의 역사를 배우기 위해 킬링필드를 방문하였다. 30여년 전 공산주의 정권 크메르루주가 반항하는 지식인들을 죄다 죽인 곳이다. 그때 당시의 선생님들, 인재들, 그리고 다양한 지식인들을 학살한 것이 현재 캄보디아 발전이 발목 붙잡힌 이유다. 현재 생존하는 중년은 모두 농부 또는 어부이며 앞으로 다시 많은 지식인을 키우려면 시간이 걸린다. 캄보디아는 다양한 면에서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발전할 가능성이 더 많은 나라일지도 모른다. 이런 아픈 역사를 겪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봉사를 하게 되어 걱정이 많았지만 봉사 첫날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아이들은 수업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센터로 왔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우리를 만나기 위해 목 빠지게 기다렸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오히려 거리낌 없이 다가와 주어 고맙기도 했다. 또 픽업팀은 아이들이 버스로 기쁘게 달려오는 모습에 너무 기뻤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은 본 순간 소름이 계속 돋았다.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도 그랬지만 이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됐고 실감을 더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5번의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많이 친해졌고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 접하는 재료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을 하였고 색감이 다양하게 작품을 꾸미기도 하였다. 게임을 할 때에도 아이들은 밝게 뛰놀았다. 이런 아이들과 헤어져야한다는 사실에 봉사단원들은 모두 눈물을 훔쳤다. 특히 청소년들과 헤어지는 게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어린 애들보다 더 챙겨주지 못한 청소년들이 나에게 선물도 해주고 나를 그리워 할 거라며 계속 눈물을 보였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아직까지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내 얼굴에 미소를 느끼며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매번 봉사를 할 때 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인데 나보다 행복해보였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반성만을 하였다. 하지만 이번엔 나는 다른 정신을 갖고 봉사를 하였다. 우선 캄보디아 사람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앞으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나라이며 충분히 행복한 나라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나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봉사를 하였다. 캄보디아어로 ‘어꾼’은 감사하다는 뜻이다. 사소한 것에도 우리는 ‘어꾼’이라는 인사를 하였다. 더운 나라에서 우리를 위해 운전해주신 기사님, 우리를 보살펴주신 선생님들, 우리를 반겨준 현지인들, 웃음을 잃지 않게 해준 학생들 등에게 모두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화봉사단은 이번 여름 무모한 땀을 흘리지 않았다. 3개월간의 땀의 결실을 통해 뜻 깊은 인생의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