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EWHA WOMANS UNIVERSITY이화여자대학교 EWHA WOMANS UNIVERSITY

해외봉사

2012 여름 해외교육봉사_캄보디아_문은정

  • 작성일 : 2013-04-01
  • 조회수 : 741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99.9%였던 한 여름의 꿈.

소비자학과 10학번 문은정

           수업시간이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합격자 발표라는 문자가 와있었고 난 갑자기 두근거림을 느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과연이라는 생각과 함께 사회봉사센터홈페이지를 들어갔다.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내 심장소리.. 그곳엔 19명의 합격자 이름과 내 이름이 있었다. 그 순간을 아직도 난 잊지 못한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마음, 불꽃처럼 터질 것만 같은 기쁨.

           그리고 오리엔테이션 때 처음으로 행운의 19명을 만나게 되었다. 다들 초롱초롱한 눈 나와 같이 들뜬 마음을 가진 이들이었다. 내 자신 또한 너무 들뜨고 신난 나머지 자기 소개를 할 때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나의 2012년 하이라이트인 해외교육봉사가 아니 이화봉사단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했다.

           워크숍이 진행이 되었다. 워크숍에서 친목도모와 더불어 앞으로의 우리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겨울 베트남으로 떠났던 이화해외교육봉사단의 책자를 보며 무언가 성공적으로 끝낸 이들을 목표로 정말 백지에서 모든 것들이 시작되었다. 팀을 나누며 앞으로 어떤 것들을 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기업 컨택을 하여 스폰을 받아오는 홍보 팀을 맡았고, 뭔가 컨택을 하여 하나씩 성취해나간다는 게 목표도 있고 좋아서 지원을 하게 되었다. 후에 어떤 어려움이 들이닥칠지 모른 체..

           워크숍 후 우리는 확연히 친해져 있었다. 20명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간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서로 많이 통하고 하나됨을 느꼈다. 이화해외교육봉사단의 레전드가 되자 라는 우리의 꿈(어쩌면 나 혼자의 꿈일지도)을 가지고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매주 8시마다 회의를 했고 교안을 한번도 짜보지 않는 우리들이 패기 넘치게 100개가 넘는 교안을 짜고 이를 피드백을 하고. 과제, 시험, 수업 등의 활동에 아주 크나큰 프로젝트가 하나 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활짝 웃으면서 서로의 활력소들이 되어주었다.

           어느 정도 우리가 잘하고 있다고,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낄 무렵, 하나의 큰 시련이 닥쳤다. 100개의 교안, 우리가 수정하고 수정했던 그 교안들이 다 필요 없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5개로 줄이라는, 머리가 띵해지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우리의 노력이 헛수고가 된 느낌이었다. 게다가 센터가 작년 9월에 생겼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봉사센터로 가는 봉사단의 1기였던 것이라 애들은 어떤 것에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도 띵... 하지만 교안에 있어서 어떤 교안이든 간에 통일된 목표가 필요하며, 정말 아이들을 당장이라도 만난다는 것처럼 시간도 철저하게 짤 것, 아이들에게도 손 씻기 등의 기존 교육을 포함시킬 것. 많이 정리 되었다고 자부하던 우리에게 전체적으로 수정을 해야만 하는 것은 정말 크나큰 과제였다.

           크나큰 과제를 짊어진 체 우리는 또 8시에 만났다. 우리의 자식과 같은 존재였던 교안 100개중 단 5개만이 우리와 떠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가장 안타까웠고 마음이 아팠다. 어떤 교안을 채택해야 큰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연관성 있는 5일이 될까. 고민 끝에 창의성 그리고 협동심의 큰 목표 하에 개인작품에서 시작하여, 그룹으로, 그리고 단체작품으로 가는 방향으로 정했다. 그리고 정말 매일같이 만나 아이들인 마냥 직접 재료를 준비하여 만들어보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교안을 이렇게 열심히 진행될 무렵, 기업 컨택 전화 또한 시작되었다.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 얼추 적어보고 기업의 홍보나 마케팅팀 전화번호를 엑셀로 정리한 후 전화를 돌렸다. 지금껏 한번도 홍보전화를 해보지 않았던 나는, 120개정도 기업에 적어도 30개는 받아야겠다는 패기 넘치는 목표를 잡았다. 하지만 거절 또 거절 또 거절. 지금까지 한번도 내본 적 없는 목소리를 내면서 아주 상냥하게 전화를 했지만 거절을 당하는 순간 나와 함께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몰려왔다. 전화를 같이 했던 아이들은 적어도 한 군데에서 스폰을 받았지만 애석하게도 나에게는 그런 행운의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성신여대에서 재래시장을 돌며 스폰을 받았다고 하길래 우리도 재래시장에 마지막 희망을 걸기로 했다. 시장조사를 한 후 팀을 나눠 돌아다녔다. 솔직히 처음에는 별 기대 안 했다. 기업에서 정말 많이 거절당해서 그런지 시장은 더 안 해줄 것만 같았다. 정말 땡볕에 찾아 뵈었고 시장상황은 열악했다. 장사도 잘 되지 않아서 우리는 정말 10%의 희망을 가지고 돌아다녔다. 하지만 사정을 듣더니 물건을 차차 잘 살펴보시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선물로 주셨다. 박스 채로도 주시고, 엄청 큰 비닐봉지 한 가득 주시기도 하고. 그때 나는 두 번째로 두근거림을 느꼈다. 시장의 따뜻함 그리고 동시에 감사함을 느꼈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물품도, 교안도 준비가 되어가고, 우리의 출발이 한치 앞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우리가 매일매일 힘들게 그리고 열심히 준비했던 교안들이 잘 진행될 수 있을까.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서로서로 지쳐가고 있었고, 서로서로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하지만 모든 근심과 걱정은 한국에 두고 정말 순수한 마음만을 가지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울음과 파이팅에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그렇게 캄보디아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날씨 때문에 깜짝 놀랄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건만 날씨보다는 곳곳에 있는 도마뱀 때문에 놀랬다. 한국에서는 접할 수 없는 도마뱀이 이곳엔 많이 깔려있었다. 아이들을 만나려면 이 도마뱀에도 적응을 해야지, 환경적인 것도 적응하는 것 또한 아이들을 만나는데 있어 도움이 될꺼야라는 생각에 그 후론 태연하게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센터를 방문하고 여러 가지 관광 후 드디어 교안을 하게 되는 첫날이 돌아왔다. 우리가 했던 노력들이 보여지는 시간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오니 모두들 긴장한 얼굴들이었다. 첫날이라 아이들도, 우리들도 서로 친해지는 것들이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친해지려면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고, 내가 먼저 안아줘 야하고, 내가 먼저 인사해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이들에게 장난도 치고 여러 가지를 했다. 한국말로 조사해온 크메르어가 발음 또한 틀리니 아이들은 그것이 웃긴 마냥 마구 웃었다. 나도 웃고 그들도 웃고 정말 작은 것 한 가지에도 함께 깔깔깔 웃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았다. 오전, 오후 두 번 나누어 교안을 진행했었고, 그 안에서 내가 맡은 아이들은 총 5명의 아이들이었다. 정말 5살부터 시작하여 15살까지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을 빨리 외우기 위해 자꾸 그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안아주고 여러 가지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 쌀보리 게임도 가르치고, 스트레칭도 하고 춤도 요란하게 엽기적으로 추고. 작은 것 하나하나에 즐거워하는 아이들. 내가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방긋 웃어주는 아이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눈빛만으로 뜻이 전해지는 아이들. 때로는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아이들. 나이와 다르게 선생님부터 생각하는 아이들. 선생님 말도 잘 집중해서 들어주는 아이들. 자기가 먹던 빵을 나눠주며 방긋 웃는 아이들. 달지 않는 두유를 선생님 기쁘게 해주기 위해 빨리 먹기 대회를 하는 아이들. 정말 지금껏 많은 아이들을 만나왔지만 정말 이렇게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이 또 어디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은 빛이 났다.

           미숙하고 어쩌면 재미가 없었을지도 모르는 교안들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주었고, 이해도 되지 않는 말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주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지금 교안을 무사하게 끝낼 수 있었던 이유도 아이들의 덕분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생각난다 나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면 눈물이 난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해주고 싶지만 그렇게 해주지 못한 것이 제일 미안하다. 매 순간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봉사자들이었지만 항상 아쉬움은 남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을 보기 위해 우리는 어쩌면 언젠간 또 프놈펜으로 떠날지도 모른다.

           아직도 사실 실감이 나질 않는다. 뭔가 한국에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내일이면 또 다시 아이들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식상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꿈나무인 아이들을 내가 내 일생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감사한 일인 것 같다. 더불어 이 아이들을 나를 포함한 19명의 단원들, 그리고 정익중 교수님, 박현주 선생님과 함께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행운이다.

           아이들도 그리고 우리들도, 앞으로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생활을 하면서 살겠지. 하지만 한 여름의 꿈, 아주 아주 더운 한 여름의 추억은 언제나 생생하게 각자의 마음 속에서 소중하게 간직될 것이라고 믿는다.

여담으로 우리를 위해 항상 도와주시고 많이 생각해주시고 고생하셨던 정익중 교수님과 박현주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보다도 10배는 더 고생했던 리더인 다영언니, 부리더인 슬기언니도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그리고 언니들, 친구들 그리고 동생들 수고 많았고 사랑해요!

          덧붙여 99.9%인 이유는 뒷풀이와 해단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 우리 봉사도 화끈하게 한 것처럼 화끈하게 마무리해요! 그렇다면 우리 봉사단은 길이길이 100% 아니 완벽한 봉사단으로 남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