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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

2011 겨울 해외의료봉사_베트남_박지인

  • 작성일 : 2013-03-29
  • 조회수 : 879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이화봉사단 의료선교봉사를 다녀와서

 

사회과학대학 소비자학과 09 박지인

 

의료봉사를 하겠다고 처음 사회봉사센터에 지원을 하면서 제일 망설였던 것은 의료와 관계가 없는 내가 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면접에서는 의료 외에도 할 일이 있다면 내가 나서서 열심히 하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막상 봉사를 하기위한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오고 봉사활동 준비를 시작하니까 긴장 되었다. 의료라는 것은 어떤 봉사보다도 무엇인가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베트남에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나는 약이나 의료기기에 대해 문외한이었으므로 그런 일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봉사대원들의 침낭을 싸고 상자나 쓰레기를 치웠다. 그때는 의료봉사를 가면서 나 자신은 의료와는 관계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허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현지에 가자 싹 풀리게 되었다. ‘봉사라는 것은 의료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므로 학생들도 할 일들이 있었고, 또 의사선생님들의 잔심부름을 하는 것또한 포함되기도 했다. 내가 주로 맡은 일은 대민 봉사였기 때문에 스스로 할 일을 찾기로 해서 동물 풍선에 붙일 눈알을 하얀 스티커를 사서 매직으로 그려갔다. 내가 찾아서 한 일에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별거 아니었지만 뿌듯했다.

우리가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곳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5시간 정도 떨어진 탄호아라는 곳이었는데 큰 유치원을 빌려 그곳에 임시로 병원들을 만들어 진료하였다. 준비기간과 각종 사전행사를 제외한 핵심적인 봉사활동시간은 이틀 반 동안이었다. 학부생이라도 대민봉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물리치료실, 치과, 약국 등을 돌아가면서 의사선생님들을 도왔기 때문에 일반 봉사활동과는 달리 색다른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도 힘들기보다도 꿈같던 시간으로 기억되어 너무 아쉽기만 하다.

 

1) 대민봉사에서

 

첫날 오전과 둘째날 오전에 맡게 된 일은 대민 봉사였다.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역을 붙여 줬었는데 그들은 하노이 대학교의 한국어과 4학년 학생들이었다. 영어라도 잘 통하면 좋았을 것을 영어를 해도 발음이 우리와 너무 달라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안녕이라는 말을 배워서 연습했지만 대민봉사가 시작된 첫날 아침부터 오전 내내 아이들은 오지 않아서 초조했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나는 텅 빈 공간에서 언니들과 떠들며 풍선을 만들다니... 놀러온 게 아닌데 놀러온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아이들을 위해 미리 만들어놓은 풍선들을 어른들이 자꾸 가져가고, 심지어 동물 종류별로 가져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드리고 싶었지만 풍선이 한정되어있었기 때문에 통역을 통해 설명을 드렸지만 막무가내로 가져가는 분들도 계셨다. 솜사탕기계를 만지작거리면서 자기들끼리 해먹는 것을 보고 조금 답답하기 했다. 한편으로는 봉사하러왔으면 베풀어야지 옹졸한 내 자신에 대해서도 당황했다. 그래도 학교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와글와글 몰려서 손등에 앞 다투어 그림 그려달라고 할 때 는 너무 기분이 좋았고, 그전까지 답답하던 마음이 확 풀렸다. 문제는 역시 언어여서 뭘 그려달라는지 알 수 없었고 미리 단어들을 좀 외워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둘째 날 대민에서는 첫날보다는 능숙하게 아이들을 다룰 수 있었고 사람들도 많이왔으며 문장도 전날보다 외워가서 즐거운 대민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어떤 남자아이가 매우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풍선으로 만든 왕관에 써주었는데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그 풍선을 누군가 가져가 버려서 사진으로라도 남겨놓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또 마지막 날, 대민담당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싸인을 해달라고 몰려들어서 대원들이 연예인처럼 돌아가며 싸인을 해주기도 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겪지 못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2) 접수와 물리치료실 그리고 치과

 

첫날 오후에 맡은 접수는 의사소통의 문제로 내가 제일 아쉬웠던 영역이었다. 환자들의 표정이 너무 무표정이었기 때문에 외국인을 싫어하는 줄 알고 쭈뼛거렸다. 또 통역하는 분들이 통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일인 병원안내가 써진 차트들을 자꾸 가지고 가서 멍하게 서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표정이 무표정이었던 것이었고 통역 분들은 내가 안내하는 사람인줄 몰랐던 것이었다. 두 시간 정도는 정말 어영부영 지나갔고, 또한 약자로 쓰인 병원 안내와 병원위치를 외우느라 다리 불편한 환자들을 이리저리 따라다니게 해서 너무 미안했다.

물리치료실에서는 시작할 때부터 환자가 있었기 때문에 의사선생님께서 틈날 때마다 할 일을 알려주셨다. 차트만 정리하다가 차츰 전선연결하고 침을 뽑고 피를 닦는 것을 알려주셨다. 딱히 힘든 일은 없었지만 침을 맞아 본적이 없어서, 침을 잘못 건드릴까봐 전선연결할 때 손이 떨리던 기억이 남는다. 또 환자들이 벗은 옷을 받을 때와 부축할 때 냄새가 났지만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약간 힘든 일이었다. 괜히 인종차별이라던지 무시한다던지 오해를 받을까봐 뒤집어 벗은 옷까지 열심히 개켜놓고 웃는 얼굴로 계속 신짜오(안녕하세요)’를 연발했다. 어떤 할머니께 안마를 해드리는데, 팔이 아파서 잠시 기지개를 핀 사이에 할머니가 세게 두드리라고 하셔서 10분쯤 쉬지 않고 등을 두드려 드렸는데 별거 아니었지만 나름 고된일이었다. 기초체력도 있어야 이런 봉사할 때 나도 힘들지 않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다.

마지막 날에는 치과에 가고 싶다고 자원해서 가게되었다. 치과에서는 기구소독과 발치한 치아들을 버리고 기본 기구들을 선생님들께 전달하는 것이 내 일이었고, 진료는 모두 선생님들이 하시므로 나로서는 힘든 점은 없었다. 주사기로 다른 용도로 쓰는 기구를 만들 때 덜렁대다가 찔려서 피가 나는 바람에 그 일은 못하게 된 것이 너무 아쉬웠고 진료에 조금은 방해가 되서 미안했다.

병원에 간다면 환자로만 가던 내가, 의료봉사였기 때문에 수술 장갑인 라텍스도 껴보고 마스크도 써보고 이것저것 경험할 수 있어서 힘들다기보다는 3일 내내 맡은 일들에 대해 설레였고, 정말 잊지 못할 시간들이었다.

 

3) 그밖에

 

다른 봉사 대원중에 몇 분은 현지음식의 향신료 때문에 밥을 잘 못 먹었지만 나는 관광에서는 먹을 수 없는 새로운 음식들을 접해서 너무 신기했고, 감사했다. 그러나 화장실이용은 더럽기도 하거니와 문이 없어서 정말 곤혹스러웠다. 학교 앞에서 하숙을 하면서 불편하다고 불평하기도 했는데 한국에서 태어나서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해외봉사를 통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역시 사람은 어디서나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내가 서툰 베트남어로 열심히 떠들기만 하면 웃어준 것이 고마웠다. 또 실수를 하더라도 괜찮다며 웃고 넘어가신 선생님들도 고마웠다. 열악한 환경에서 의자가 없어서 하루종일 무릎 꿇고 진료하신 치과의사선생님들, 정신없이 진료하시는 다른 선생님들 또한 감동적이었다. 어떤 할머니께서 다리가 썩어서 수술을 하는데 아픔을 참는 모습은 너무 안타까웠고, 그 모습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봉사활동 외에도 우리와 함께 진료활동을 하신 써니클리닉에 견학을 가고, 하롱베이나 삼손비치, 호안킴 호수 근처의 재래시장에 방문하는 등 문화탐방활동도 있었다. 저녁에 룸메이트와 함께 의전원언니들의 방에 놀러가 떠들고 웃기도 하고, 생각보다 숙소들이 좋았지만 난방이 안되어 침대위에 침낭을 깔고 잔 것도 너무 즐거웠다.

주는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은 너무도 값진 경험이었기에 기회만 있다면 도움이 필요한 곳에 더 오랫동안, 봉사하러 다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