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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

2011 겨울 해외교육봉사_베트남_임혜림

  • 작성일 : 2013-03-29
  • 조회수 : 720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소중한 만남, 아름다운 기억

 

환경식품공학부 11학번 임혜림

 

2012/ 1/ 4

베트남타오 단센터에서의 떨리는 첫날이었다. 오토바이 천국인 베트남에서 우여곡절 끝에 센터에 도착했다. 센터는 생각했던 것 보다 아기자기했고, 안으로 깊고 위로 높은 전형적인 베트남 식 건물이었다. 후덥지근한 대기가 몸을 지치게 했지만 베트남에 온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짧게 준비시간을 가진 후 아이들을 만났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지만 내가 알아듣든 말든 이야기하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아이들을 통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땀에 절어가는 내 몸이 찝찝했을 뿐 입으로 투덜댄 것만큼 힘들진 않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으로 최고라고 말해주는 것,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쓰다듬는 나를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며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알아듣지 못 할 때의 심정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미안하기까지 했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나서 제일 큰방인 701호에 모여 회의를 했다. 내가 한 어떤 일에 대해 오늘같이 체계적이고 마음에 와 닿는 피드백은 처음이었다. 설레고 아쉬움 많은 첫날이었지만 그 만큼 더 신나는 내일을 기대한다. 항상 지나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듯, 매 순간을 소중히 하는 앞으로의 열흘이 되기를 바란다.

 

2012/ 1/ 5

아슬아슬하게 시간 맞춰 일어나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 피드백을 한 덕분에 오늘 하루는 어제보다 10배는 더 수월했다. 물론 하루 사이 아이들도 우리도 더 적응한 이유도 빼놓을 순 없다.

! 오늘 오전엔 새로운 A반 아이들을 만났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서인지 처음엔 수줍음도 많고 참여도 안 하려고 했지만, 점점 마음을 여는 게 눈에 보여 좋았다. 한복을 입어보는 시간엔 부끄러워하며 참여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었는데 즐거워하며 땐 모두가 배꼽 빠지도록 웃었다. 생각해보니 도와주시는 분들께서도 오늘은 즐겁게 수업에 참여하신 것 같다. 모두가 즐길 수 있어서 좋은 하루였고 통역 언니들과도 가까워질 수 있어서 뿌듯했다.

 

2012/ 1/ 7

베트남에서의 우리 일정이 반이 지난 날이다. 벌써 반이라니 10일은 너무 짧은 것 같다. 오늘 프로그램 중에 한 솥 비빔밥이 있었다. 약간 맵게 되기도 하고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중간 중간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 덕분에 힘이 났다. '화이' ''은 두 그릇씩이나 먹었다! 너무 예쁘다. 어른들이 왜 밥 잘 먹는 아이들을 예뻐하는지 이해가 갔다.

오늘 저녁은 뷔페에 갔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보니 우리 센터 아이들이 생각났다. 식당에도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많았는데 본인들이 선택하지 않은 가정환경으로 인한 차이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밥 먹고 나오는 길에 뷔페 옆 잔디에서 깜짝 공연을 하게 되었다. 밥 먹는 곳 바로 옆이라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사람들이 구경했다. 갑작스럽고 당황했지만 뿌듯했다. 시끌벅적했던 하루가 이렇게 끝났다!

 

2012/ 1/ 9

달력 만들기 프로그램이 어제 회의를 통해 추가되었다.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우리가 가는 날짜를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 프로그램, 미리 안 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오후 C반 미소천사 ''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눈만 마주쳐도, 손만 잡아도 너무 예쁜 미소를 보여주던 아이가 우리가 가는 이야기를 듣더니 집에 갈 때까지 웃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그 때, 남은 시간을 더 재미있게 놀자고 뭔가 더 기분 좋은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가슴이 너무 아프고 당황스러워서 그냥 그렇게 집에 보내고 말았다. 내일은 그 미소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끝나고 회의시간에 '그응'이라는 아이가 달력에서 우리가 가는 날짜를 계속해서 손으로 문질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 슬펐다. 색연필이 다 번지도록……. 지금 내 마음도 그렇다. 큰 욕심 안 부리고 단 일주일만이라도 여기 더 머무르고 싶다.     

 

2012/ 1/ 10 낮잠 시간

베트남 사람들은 낮잠을 잔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돗자리를 깔고 누워 쉬고 있다. 아침을 일찍 시작해서 일까 낮잠시간은 대부분이 지킨다고 한다. 조그마한 아이들이 옹기종기 나란히 모여 자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 같다. 고요함에 피곤이 싹 가신다. 여기를 떠나서도 이 고요함과 여유로움을 간직하고 싶다. 알람이 작게 한번 울리자 교복은 입은 아이들이 베개를 들고 일어난다. 얼굴에 졸음이 가득한데도 제 가방을 찾아 메고 학교에 간다며 손을 흔든다. 저쪽 앞에선 '' ''이 잠은 안자고 누워서 꼼지락 댄다. 귀여워 죽겠다. 지금은 약간 지루할 수 있는 점심시간이 한국에 가면 분명 그리워질 거다.

 

2012/ 1/ 12

오늘이 센터에 가는 마지막 날이다. 다 큰 A반 아이들 앞에서 울어버렸다. 앞에서만큼은 웃으면서 인사하려고 했는데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헤어지는 건 항상 어렵나 보다. 마지막 날 10일 동안 센터에 오가며 처음으로 매일 눈으로만 보던 아이들이 밥 먹는 곳에 갔다. 아이들이 끌고 가 의자에 앉히고 밥을 떠줬다. 수저와 젓가락을 손에 쥐어 주고 먹으라고 시늉하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또 한 번 찡하다. 봉사는 발을 씻어주는 것이라던 인솔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작은 행동들이 너무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센터를 되돌아 나오며 꼭, 다시 한 번 찾아오리라고 마음먹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려 나를 잘 기억해 내지 못해도 다시 만나면 열흘 전 첫날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천천히 마음을 열어줄 것이다. 열흘간의 모든 활동에 감사하며 남은 시간도 잘 마무리 해야겠다.   

 

2012/ 1/ 21

짧게만 느껴졌던 베트남에서의 10 11일은 되돌아 생각하니 꿈만 같다. 땀으로 온몸이 젖고 발바닥이 새카매져도 즐거웠고 땟국물 시커먼 베개를 베고도 편안하기만 했던 그때는 꿈,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있는 기분이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꿈이 또 있을까 싶고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실 대학생활 첫 일 년을 보내며 마음이 많이 심란했었다. 대학에 왔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며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는 것 같아 아쉬움과 허무함에 많은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 중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어딘가에 꽂혀서 에너지를 쏟아 붓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때마침 이화봉사단을 만나게 되었다. 방학을 하고도 매일같이 만나 공연연습과 프로그램 시연을 하고 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고, 너무 즐겁기만 했다. 처음에 내가 그토록 원하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쳐가는 몸에 피곤함만 느꼈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우리 봉사단원들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면서 조금씩 나에게 찾아온 기회를 알아차리게 되었고 너무 늦게 정신 차린 것 같아 봉사단언니와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베트남 센터에서 더 열심히 활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의 얼굴이, 깨끗한 표정이, 예쁜 목소리가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 정말로 즐겁게 노는 법, 나에게 소중한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법 등. 지금 생각해보니 함께 어울려 놀 땐 내가 더 신났었던 것 같고, 아이들이 올려주는 반찬에 처음으로 눈물 젖은 밥도 먹어봤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처럼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누고 싶은 마음, 손짓 발짓과 웃음, 얼굴 표정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게 무엇인지 어설프게나마 느끼기도 했다.

베트남에서의 10일 동안 얻은 또 하나의 소중한 것은 사람이다. 이렇게 좋은 언니와 친구들을 어디서 또 만날까 싶을 정도로 모두 소중하게 느껴졌다. 한 달가량을 함께하며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아이들과의 이별만큼이나 봉사단원들과 공항에서 헤어질 때도 너무 아쉬웠다. 한국에 돌아와 각자의 일상 속으로 돌아갈 테지만 자주 만나고 싶다. 시간이 지나 소중했던 기억이 흐릿해져도 그 기억 속의 사람들과 가끔씩 추억하며 미소 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