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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

2011 겨울 해외교육봉사_베트남_이세경

  • 작성일 : 2013-03-29
  • 조회수 : 739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그 어느 겨울보다 따뜻한 겨울

 

언론정보학과 10학번 이세경

 

‘베트남 해외교육 봉사단 포기해야 할까?’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봉사단을 신청할 때는꼭 붙어서 베트남에 갈 수만 있다면…’하는 간절함뿐이었지만, 학생 대표에 당선되고 나니 한국에서 해야 할 것들을 잠시 놓아두고 떠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봉사단을 포기하려는 마음에 사회봉사센터 문 앞을 여러 차례 서성이기도 했다. 나의 우유부단함이 없었다면 이 소감문을 쓸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때 내가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게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열흘 동안 정말 과분할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센터에서 아이들을 처음 마주한 날이 선명히 떠오른다. 길다란 거실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익혀갔던 베트남어신 짜오, 또이 덴 라 세경!”을 처음으로 써먹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소개를 하면서 서로의 이름을 외우기는커녕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발음이라서 따라 말하기도 어려웠다. 덜컥 겁이 났다. ‘어이쿠! 이렇게 말도 안 통하는데 어떻게 열흘 동안 교육을 하지?’ 아니나 다를까, 교육 첫날 우리는 전적으로 통역에 의지했고 그 결과 숙소에 돌아와서 자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은 몸대로 지치고, 무엇보다 출국 하기 전 한 달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준비해온 우리의작품들이 빛을 발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이후에는 오전, 오후 교육, 그리고 치열한 반성과 내일에 대한 준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니, 아이들도 우리의 진심을 전해 받았는지, 까칠하게 굴면서 베트남 현지 통역사들과만 이야기를 나누려 하고 이화봉사단에게는 말을 거는 법이 없던 아이들이 먼저 다가오기 시작했다. 손 잡아달라고, 안아달라고, 업어달라고, 혹은 게임하자고 먼저 다가오는 아이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하지만 교육 중반에 접어들면서 한편으로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머물다가 곧 떠날 사람인데 이렇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는지.’하고 말이다.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사랑을 아낌없이 나눠주자는 것이었다. 내가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이 부족한 아이들이다.

마냥 밝아 보이는 아이들도 저마다의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보기에 한낱 외국인 대학생에 지나지 않을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화목하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며 받은 사랑이었다. 남김없이 사랑을 나눠주려고 퍼주고 퍼주었는데 내 마음이 여전히, 아니 베트남에 가기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으로 가득 찬 것을 보니 역시 사랑을 낳는 것은 사랑이라는 확신이 든다. 사랑은 케잌을 조각 내어 나누어 먹듯이, 나눈다고 해서 1/n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내가 나눠준 사랑을 배로 내게 돌려주었다.

베트남에서 얻은 교훈 첫 번째가사랑을 낳는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이라면, 두 번째는 하모니다.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사람들 스무 명이 모여 해외교육 이화봉사단을 이루었다. 처음에는 기획, 물품, 회계, 촬영, 공연 등의 팀으로 나누어 사전 준비를 했고 현지에서는 A, B, C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했다. 번갈아 가면서 수업을 진행하고, 매 수업마다 그 속에 물품, 촬영, 보조 역할을 맡은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은 감동이었다. 동생 혹은 언니 가를 것 없이 구성원 모두가 존재 자체로 든든했다. 저녁을 먹으러 야외 뷔페에 갔던 날, 공연장을 보고 누군가 즉흥적으로 공연을 제안해서 정말로즉흥공연을 하게 됐는데 그때 머뭇거림 없이 동조했던 이유가 사실 여기에 있다. 이 멤버들이라면 무엇을 함께 한다 하더라도 자신 있었다. 종강 직후 2주 동안 매일 같이 만나서 교육 준비 및 공연 연습하고, 현지에서 열흘간 아침부터 밤까지 같이 있노라면 누군가 짜증 한 번쯤 낼 법한데 그 누구도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으니, 이 보물들을 놓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따름이다.

한국에 돌아온 지 딱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언제 반팔을 입고 돌아다녔냐는 듯 점퍼를 껴입고 목도리까지 칭칭 두른다. 내 몸은 그 새 한국의 추위에 적응했지만 내 마음은 그 어느 겨울보다 따뜻하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뒤집게 된다. 핸드폰 뒷면에 붙어있는 내가 아끼던 녀석, 오전 B반 코이Khoi의 증명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아직도 그곳에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