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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

2011 겨울 해외교육봉사_베트남_한다솔

  • 작성일 : 2013-03-29
  • 조회수 : 835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헨깝라이, 비에트남!

 

경제학과 10학번 한다솔

 

저녁의 주황색 불빛. 간지러운 공기의 느낌. 좁고 안쪽으로 긴 건물.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

짐을 잔뜩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 삐죽삐죽한 얼굴에서 둥그스런 얼굴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인상. 야외에 있는 많은 식탁. 밤에는 화려하고 소란스러워지는 낮의 정돈되고 조용한 공원. 익숙한 한국어 간판들. 의외로 세련된 베트남 글씨. 중국 문화권의 영향으로 곳곳에 보이는 한자. 1970년대 한국의 모습 사진집에서 보일 듯한 낯익고도 낯선 풍경. 불개미 같은 오토바이 떼와 다양한 개성을 나타내는 마스크와 헬멧. 쌀 수출 2위국에 걸맞게 정말 맛있는 쌀국수. 베트남 사람들의 한 끼 식사라는 월남 쌈 두 개. 밍숭맹숭하지만 풍족한 열대과일.

 

베트남에 여행을 갔다면 이 정도에 그쳤을 인상들. 그러나……

 

내가 2012 1월 꼭두 새해부터 베트남에 가게 된 건 해외교육봉사였다. 처음 인트라넷에서이화봉사단(베트남교육봉사) 모집을 보고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자리에서 신청서를 작성했던 때를 기억한다. 봉사라는 것. 대학교에 들어와서 내게 가장 큰 수업이라 할 수 있었던 그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그러나 그보다 순간 나를 매료시킨 건베트남이었다. 나와는 전혀 연결점이 없어 보였던 이국에 가 볼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거기에서 펼쳐질 열흘간의 봉사활동. 신청서를 접수하고 면접을 보고 합격결과를 받고. 사막과 같이 메마르고 지쳐있던 나의 학기 중에 가끔가끔 이화봉사단의 소식이 전해질 때 마다 단비가 내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때마다 신선하고 달콤한 꿈에 부풀었다. 방학 후에는 거의 매일 모여 본격적으로 프로그램당 담당자를 정하고 구체적으로 짜인 수업 스케줄에 따라 직접 시연도 해보면서 몸에 와 닿게 책임감을 느끼며 만반의 준비를 해갔다. 몸치로서 역경을 맛보게 해준 공연 연습도 빠짐없이 하면서 출국날짜는 재빠르게 다가왔다. 공항에서 연두색 단체 티를 입고 사진을 찍은 후 올라탄 비행기에서는 기대감에 설레 한숨도 자지 못하고 옆에 앉은 지영언니와 예지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다섯시간을 보냈다. 도착 다음 날, 웰컴 투 오토바이헤븐을 경험하며 우리가 활동할타오단센터에 도착하였다. 노상 테이블이 많은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 도착한 그 곳은 너비가 좁고 안으로 깊게 생긴 4층짜리 건물이었다. 출입문과 바로 이어진 일층의 공간에 우리가 일렬로 들어섰을 때 중앙에서 놀던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우르르 벽으로 붙어서 우리는 그렇게 몇 초간 서로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나였지만 그때 든 첫 생각은예쁘다. 인사하고 싶다였다. 그러나 용기 내어 건넨씬짜오의 인사말도 베트남의 다이나믹한 6성조가 빠져서인지 전혀 전달되지 못했다. 준비기간 동안은 크게 신경 쓰지 못했던 언어문제가 실감되는 첫순간이었다. 첫날부터 느낀 언어의 장벽은 아이들에게도 우리에게도 큰 걸림돌이었다. 프로그램 진행 중에 아이들은 연신 어깨 위로 양 손을 돌리며 못 알아듣겠다는 제스처를 취하였다. 그리고 우리도 점점 통역 선생님에 의존하게 되었고 주객이 전도된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매일 밤엔 숙소에 모여서 오늘 하루의 소감을 말하고 피드백을 받는 회의가 있었는데 그 문제가 독보적으로 많이 나왔다. 그러나 이미양선생님과 박경옥 교수님의 경험 어린 조언을 바로 바로 적용시키며 오전반, 오후반이 따로 모여 철저히 수업을 준비하고 우리는청년정신을 발휘하며 하루하루 나아진 모습과 더 많은 웃음을 아이들에게 전해주었다. 인체모형, 글라스데코, 소원나무, 한국어 글씨와 같은 결과물이 하루하루 수업을 마칠 때마다 센터의 벽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아이들은 팔에는 자외선비즈팔찌를, 옷은 치자로 염색한 티셔츠를 입고 오면서 수업의 결과물을 자신의 잇아이템으로 소중히 간직해주었다. 아이들은 겉모습만 변한 게 아니었다. 처음엔 우왕좌왕 돌아다니고 인내심 없이 떼를 쓰는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점점 질서를 지키고 수업에 대한 집중도 잘 해주어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그러한 아이들의 변화를 보며 흐뭇하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미안했다. 처음에 센터에서 예상 밖으로 수업이 잘 진행되지 않자아이들이 문제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서’,’거리의 아이들이라서와 같은 이미 편견의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며 속상할 땐 그렇게어쩔 수 없지 뭐하며 나를 합리화시킨 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더 조용히 시키고 더 통제할 수 있는 방향만을 옳은 방향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나이 때 아이들은 한국에서도 또 잘 교육받은 아이들일지라고 그렇게 잘 떠들고 잘 돌아다니는 것을.  어리석은 나의 잣대로 옳은 쪽 그른 쪽을 나누었던 경솔한 행동이었다.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며 또 단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그 우매했던 생각을 점차 떨쳐버리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으로 우리가 공연을 한 후 인사할 때 위엔이 눈물을 흘리며가르쳐주셔서 감사했고 우리가 혹시라도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용서해달라”하는 말을 들으니 아이들은 열린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포용해줬는데 그렇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 생각나 매우 부끄럽고 마음이 쓰렸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 배운다는 말이 맞다.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은 호치민 외국어 정보대학교의 한국어학과 학생들과의 교류를 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한국에 이미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라 금방 친해졌고 지금도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한다. 아이들과도 이렇게 연락을 할 수 있더라 면면 더 좋았을 텐데…… 열흘 동안 정말 꽉꽉 알차게 감사하게 시간을 보냈던 이번 경험. 다음에 꼭 또다시 베트남을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다시 타오단에 들러 아이들과의 그 환하고 밝았던 추억을 되뇌고 싶다.

아이들의 빛나고 순수한 웃음, 그에 못지않게 천진난만한 센터선생님들의 이면들, 소녀시대가 적힌 한 아이의 가방, 빠밤빠밤소리와 최고의 유턴 실력을 자랑하는 버스아저씨, 한국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해주는 한국어학과 학생들, 공원에서 마시는 시원한 코코넛음료수, 갉아먹는 재미도 추가, 차창 안의 이방인에게도 환히 인사해주던 호치민 시민들,

 

여행만 했더라면 몰랐을 베트남의 모습들..

다시 보자 베트남! 헨깝라이 비엣뜨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