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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

2011 겨울 해외교육봉사_베트남_최지영

  • 작성일 : 2013-03-29
  • 조회수 : 649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1월에 내가 춥지 않은 그 이유

 

간호과학과 10학번 최지영

 

  기말고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의 사전모임은 시작되었다. 한류문화의 영향으로 K-pop 의 인기가 상당하다는 소식에 나름대로 우리의 역량 안에서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되어 춤이라는 이름의 몸동작을 익혀나갔다. 한국의 미를 알리겠노라고 우아한 부채춤과 흥겨운 소고춤도 연습해나갔다.

프로그램을 짜고 담당자를 정하고 시연을 해보는 등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문관에 모여서 각자의 바쁜 일정들을 뒤로해가며 부족함이 없는 봉사를 위해서 차근차근히 준비해나갔다.

월화수목금 학기중보다도 더 타이트한 스케줄아래 지각하면 일분에 천원이라는 엄격한 규정도 정해가며 20명이 함께 먹고 떠들기도 하며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어느새 해외봉사 출국 일도 다가오고 있었다.전체 프로그램 준비뿐만 아니라 환전과 개인 짐 싸기 등 진짜 실질적인 떠날 준비를 해가는 중에 발대식도 열렸다. 우리 베트남 리더 언니의 선서로 한층 더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며칠의 준비기간 동안 하나가 된 우리는 베트남에서의 나날들을 기대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드디어 2012 1 3일 우리의 출발을 축하하는 듯이 하늘에서 펑펑 눈이 내렸다. 짐을 싸면서도 떠난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를 타자 그제서야 비로소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 드디어 떠나는구나. 신짜오 베트남!!'

  도착 다음날 드디어 타오단 센터를 방문하게 되었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오토바이가 많아 위험했기에 버스를 타고 센터에 도착 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따단~ 따단~’우리가 따라 불러댔던 비상등 소리. 버스에서 내린 베트남의 거리는 다소 이국적이었고 건물들의 모양도 우리와는 많이 다르게 생긴 문이 좁고 안으로 길다랗게 생긴 구조였다. 그렇게 낯선 장소에서 이화 봉사단의 소개 등을 하며 우리 아이들을 처음 만났다. 대화는 물론이고 서로가 아직은 무척이나 낯설었지만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 우리의 열흘도 즐겁고 좋은 일들로 가득할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며 우리는 늘 7시까지 로비에 모여 8시부터 11시까지 오전반을 진행하고 1시반부터 4시반까지 오후반을 진행했다. 가장 큰 아이가 16살이었는데 이 아이가 속한 A반부터 나이별로 B,C반까지 세 반을 운행했고 각 1인당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 반 총 두 반에 들어가게 되는 구조였다. 각자 맡은 반 아이들과 있는 동안 이나마 조금이라도 깊은 유대를 맺자는 결론이 나서 처음 맡은 반 그대로 쭈욱 진행하게 되었는데 나는 오전에는 B, 오후에는 C반의 아이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오전 B반의 아이들은 그나마 조금 커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알파벳을 아는 아이들도 있는 등 어느 정도 통솔이 되었다. (장난꾸러기 남자 아이 3명이 틈만 나면 키득키득 딴짓을 하는 등 집중을 흐리긴 했지만 ^^;;) 그런데 오후 C반의 아이들은 정말 어린 측에 속하여 뭐라고 마구 마구 소리를 질러 대는데 도저히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어 통역 분께 부탁해 보아도 그 분들 조차 뜻이 있는 말이 아니라며 통역불가라고 말씀하시기 일쑤였다. 언어의 장벽을 느끼기도 잠시 손짓과 발짓을 해가며 바디 랭귀지로 소통하고 못 알아 듣는 한국어를 눈을 바라보며 사용하기도 하고 듣기에만 베트남어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하는 등 하며 차츰 차츰 아이들과도 마음을 주고받으며 우리들만의 의사소통을 진행했다. 그러는 사이 정도 많이 들고 우리가 사랑을 주는 만큼 아이들의 모습도 차츰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집중을 필요로 할 때 사용했던집중의 박수를! 짝짝짝 집중!”을 너무나도 좋아하며 따라 하고 우리의 프로그램에 집중해 주었고 알아서 척척 책상도 접었다 폈다 정리에 앞장섰다. 색연필과 사인펜, 크레파스도 원래 있던 곳에 꼭꼭 정리해 넣는 등 아이들의 변화한 모습에 우리도 너무나도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이 일상 속에서 전해주는 작은 감동 감동들과 따스함이 우리를 더욱 힘나게 했고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마음 한 켠을 무겁게 했다. 자신의 이름도 쓰지 못하는 어린 웍이 자신에게는 거의 상형문자 같았을 내 이름을 외워 자신이 만든 작품마다지여ㅇ이라고 적어서 나에게 보여줬을 때는 정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우리가 주는 사탕을 반 뚝 갈라서 우리에게 먹여줄 때도, 자신의 자리 옆에 빈 의자 하나를 맡아놓고서 두드리며 우리를 바라보고 의자를 손짓 할 때도, 너무나도 맑고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하는 감동의 연속이었다. 봉사단원들끼리도 때로 힘들고 지친 적도 많았지만 누구 하나 얼굴 찌푸리고 짜증내는 사람 없이 최고의 팀워크로 봉사를 해나갔다. 리더언니와 부 리더 언니, 봉사센터의 선생님과 교수님은 물론 현지 담당자분들과 통역 선생님들까지 모두가 한분 한분 각자의 자리에서 없어서는 안될 퍼즐의 한 조각처럼 우리 모두는 함께여서 완벽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서 봉사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떠나가는 날을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어두워진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서 우리도 함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안타까워했고 그러하기에 마지막까지 조금이라도 좋은 추억만을 선사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열흘 가까이 지내면서 센터는 우리에게 집과도 같이 편해졌고 우리도 아이들과 같이 맨발로 센터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소중한 기억을 쌓아갔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새까매진 발을 씻으며 까매진 발과 한층 더 밝아진 아이들의 얼굴을 함께 떠올리면서 뿌듯하고 보람차했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서 결국 이별의 날.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사를 하고 이때를 위해서 준비했던 춤 공연들을 아이들 앞에서 펼쳐놓았다. 앞에서 보이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얼굴들. 저 까맣고 맑은 눈망울들. 돌아가도 그 표정 하나하나가 생생할 것만 같았다. 공연이 끝나고 각자의 반으로 돌아가 선물을 주자 아이들도 이별이 다가온 것을 느끼는 듯이 눈물을 쏟아냈고 우리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서럽게 엉엉 우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잠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뿐이라는 것을 인식하자 더욱 더 안타까웠다. 그 아이들은 우리보다 물질적으론 부족할지라도 마음만은 훨씬 부자였다. 가는 우리에게 무엇이라도 주고 싶어 집에서 언니가 만든 팔찌며 일부러 구해온 종이 지갑 등. 자신이 가진 것을 우리와 나누고 싶어 하는 그 따뜻한 마음. 소원나무에 소원을 쓰는 프로그램을 할 때 자신의 소원은 우리가 가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이라는 그 예쁜 아이들. 그리고 학생이 되고 싶다는 그 안타까운 아이들. 평생 그 아이들의 맑은 마음과 눈을 생각하며 산다면 어떠한 힘든 일이라도 꿋꿋하고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큰 힘을 받았다.

서울행 비행기를 탈 때 서울은 영하권이며 너무 춥다기에 걱정했는데 막상 내리기 그리 춥지 않았다. 아마 베트남에서 아이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마음 때문일 것이다. 봉사를 하러 갔다가 그보다 더 큰 소중한 것을 마음에 품고 온 나는 마음이 뜨거운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