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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

2011 겨울 해외교육봉사_베트남_김정화

  • 작성일 : 2013-03-29
  • 조회수 : 621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내 생애 가장 따뜻했던 열흘

 

중어중문학과 10학번 김정화

 

어제, 엽서를 한 통 받았다. 베트남 호치민 타오단 어린이 센터에서 2주 간의 봉사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호치민 공항에서 나에게 보낸 엽서였다. 급하게 적느라 글씨는 삐뚤 빼뚤 어지러웠지만 손때 묻은 엽서를 보자 내 안의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 준 베트남에서의 날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호치민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낸 열흘은, 내 생애 가장 빠르게 흐른 시간이었다. 아침에는 빨리 센터에 가서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 밤에는 빨리 내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연속이었고, 하루 종일 아이들과 몸을 부딪히면서 지내다가 밤에 호텔에 돌아오면 그 적막함이 어색할 정도였다. 그 날의 일정을 모두 마치면 팀원들과 함께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 다음 프로그램에 대해 의논을 하면서, 나는 일종의 희열을 느꼈다.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얼마나 좋아할까, 어떻게 해야 더 재미있고 쉽게 가르쳐줄 수 있을까 생각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몸은 너무나도 피곤했지만 날마다 더욱더 다음 날이, 아이들이 기다려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처음에, 프로그램 발표 피피티를 만들고 공연 연습을 하는 등 봉사 활동을 준비하면서 나는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 있었다. 베트남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그 아이들이 예전에는 해보지 못했을 이런 새로운 것들을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생각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나서도 두려움보다 두근거림이 앞섰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다른 나라의 아이들과 소통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언어의 장벽이라는 것을 그렇게 절절히 체감하기는 난생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베트남어를 모르고, 아이들은 한국어를 몰랐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통역 언니들에게 기대게 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왜 베트남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이런 내 태도를 변화시킨 것은 다름아닌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먼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말이 아닌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고 무언가를 쫑알쫑알 얘기했다. 그들의 순수한 눈과 해맑은 웃음을 보자 나도 모르게 슬며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며 가슴에 따뜻한 것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를 나눠주려고 온 사람은 나였는데, 오히려 내가 아이들에게 얻어간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감동에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기가 막히게도 우리 봉사단이 호치민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가족끼리 다시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게 여행사에서 패키지로 가는 여행이어서 그런지, 같은 베트남이지만 북부여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족 여행 일주일 내내, 나는 눈 앞에 있는 여행 장소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호치민의 타오단 센터와 그 곳의 아이들을 떠올렸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아이들, 길거리에서 팔찌와 목걸이를 파는 아이들이 꼭 우리 센터 아이들 같고, 맛있는 걸 먹고 멋진 광경을 보면 아이들을 데려와서 같이 먹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그렇게 단기간에 내 안에서 아주 큰 부분으로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변화였다.

사실 이번 봉사활동은 나에게 개인적으로도 아주 큰 의미가 있다. 바로 대학교에 와서 잃어버렸던 내 자아를 되찾아 주었다는 점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그야말로 하늘을 날아다녔다. 언제나 정신 없이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친구들과 복도를 뛰어다니는 게 내 학교 생활의 대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대학교에 학부제로 입학하면서 과 생활도 없이, 친구도 없이 지내다 보니 점점 나의 활달함이 말 그대로쪼그라드는게 눈에 보였다. 매일 수업이 마치면 곧장 집에 틀어박히기 일쑤이고, 대외 활동을 해도 원래 내 성격이 몽땅 발휘되지 않는 것 같아서 나는 항상 찜찜한 마음으로 시간을 흘려 보냈다. 하지만 이번 봉사 활동을 되돌아보면, 나는 그야말로 유감없이 내 모든 에너지를 발산하고 내 모든 밝은 기운을 사람들과 나누었던 것 같다. 작년에 같이 국내 교육봉사를 가서 친해진 언니가 두 명이나 같이 가게 되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우리 봉사단 전체의 힘이 정말 컸다고 생각한다. 다들 한 달여 되는 시간 동안 공부도 하는 와중에 봉사 프로그램을 직접 시연해보랴 공연 연습도 하랴 바빴지만, 누구 하나 힘든 내색 하는 이 없었다. 현지에서도, 찌는 듯이 더운 날씨 때문에 모두들 지쳐있었지만 오히려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에 나 또한 더욱더 힘을 짜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지 벌써 일주일이 흘렀지만, 아직까지화 뎁”, “화 사우사우하고 외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창문을 열면 훅 하고 끼쳐오던 호치민의 후덥지근한 공기, 밤마다 회의실로 변했던 우리 호텔 방 701, 아이들의 새까만 발과 반짝이는 눈망울, 헤어지던 날 내가 울자 내 입 꼬리를 올려 주던 조그만 손가락, 그리고 끝까지 우리 버스를 쫓아오던 한 아이의 자전거……. 힘들고 슬프고 지칠 때 떠올리면 가슴 한 켠 뿌듯해지는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