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EWHA WOMANS UNIVERSITY이화여자대학교 EWHA WOMANS UNIVERSITY

해외봉사

2011 겨울 해외교육봉사_베트남_박현아

  • 작성일 : 2013-03-29
  • 조회수 : 753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12일간의 따뜻했던 겨울일기

 

                                             체육과학과 09학번 박현아

 

    2주라는 짧은 시간의 준비와 함께 어느덧 12일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고 즐거우면서도 마음이 아팠던, 그러면서도 많은 것을 배운 하루하루를 기억하며 감상문을 쓴다.

   각자 다른 학과와 다른 나이, 다른 성격인 사람들이봉사라는 한 뜻을 가지고 모인 베트남 해외 교육 봉사팀은 처음엔 서로 낯설어 했지만 몇 시간이 지난 후, ‘치킨과 피자가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어 이내 어색함이 풀리고 옆집 언니, 동생처럼 편안함으로 서로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각자 담당할 일들을 맡아 서로를 응원하며 베트남에서의 프로그램들을 준비했다. 공연으로 선보일 안무들을 폭풍으로 몰아 연습하는 것이 참 힘들었지만식사제공과 ‘엄격한 지각비시스템이 우리를 꼬박꼬박 모이게 하였다. 열정을 담아 준비한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또한 기대감을 가지고 우리는 한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고고씽 했다.

   베트남에 도착할 즈음 습하고 더운 기운이 서서히 다가왔다. 입국심사를 할 때 분위기가 살벌하여 엄청 긴장을 하던 중 중어중문학과 3학년 김정화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심사관에게~쨔오, 또이뗀라 김정화라고 느닷없이 자기소개를 하는 바람에 긴장하고 있던 심사관과 우리에게 즐거운 웃음을 주었다. 입국허가 후, 부랴부랴 가방과 짐을 챙겨서 공항을 나섰다. 공항 문을 나서니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무슨 우리나라 공항에서 유명연예인 맞이하듯 아주아주 많은 사람들이 서있었고 나는 이러한 광경들이 신기하기도 하면서여기가 진짜 베트남이구나한층 더 긴장을 했다. 그러한 인파 속에서 12일 동안 베트남 현지에서 우리를 가이드 해 주실 새싹선생님과 띠엔 언니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무거운 짐을 하나씩 차에 옮긴 후, 차로 이동하던 중 차내에 벌레가 나타나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났고 모기 같은 것들이 윙윙 날아다녀 그 더운 날 바람막이를 입기도 했다.(이 벌레와 모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방에서는 냉장고 안에서 도마뱀이 나왔다.) 더웠지만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더운 줄 몰랐다. 의외로 베트남에는 우리나라 상점들이 많았고 간판까지 한글로 되어있어서 더 신기했다. ‘아이폰 4S’까지 판매하는 핸드폰 상점이 있었는데 스마트 폰이 아닌 내 핸드폰이 뭔가 한국에서보다 더 초라해 보였다,,,엉엉,,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따스한 물로 샤워를 한 후 침대에서 몸을 움츠리며 긴장 속에 앞으로의 날들을 맞이하기 위해 첫 잠을 청했다.

   베트남에서의 기상시간은 거의 오전 620분 정도로 학교 다닐 때 보다 더 이른 시간이었다. (한국 시간으로는 8 20분이긴 하지만,,) 나는 매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감탄을 연발 날린다. 왜냐! 늘 내 룸메 나랑이가 부지런하게 다 씻고 화장대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누가 미녀는 잠꾸러기라고 했던가, 미녀는 부지런해야 한다. 미녀 나랑이처럼. 호호^-^. 맛있게 아침식사를 하고 우리는 센터로 향했다. 나는 오전에 B, 오후에 A반을 담당하여 수업을 진행했다. 처음에 아이들을 봤을 때에는베트남 사람이라는 인식이 크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이후 아이들과 친해지고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국적을 떠나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라는 인식으로 변해갔다.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뿐만 아니라 센터 선생님들도 많이 즐거워하셨는데 베트남에는 창의력 수업이 없다고 한다. 물감으로 부채나 탈을 꾸미고 치자로 티셔츠도 만드는 등 다양한 수업에 아이들이 집중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나의 몸은 많이 지치고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정말 기쁘고 보람찼다. 특별히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하고 또 하나의 꿈을 꾸게 된 수업이 있다. 바로소원나무라는 시간이었다. 센터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외국인들에게 복권이나 곰 인형 등을 판다고 한다. 내가 맡은 오후A반에도 복권을 파는 3남매가 있었는데 저녁에 복권을 팔고 낮에는 센터에 나와서 수업을 받는 것 같았다. 그 중 막내이라는 여자아이는 늘 수업시간에 적극적인 자세로, 또한 밝은 미소로 우리를 기쁘게 한 아이 중 한 명이다. 소원나무 수업시간에도 어김없이 적극적으로 예쁘게 나무도 꾸미고 우리가 알 수 없는 베트남 글씨로 소원까지 예쁘게 썼다. 어떤 소원인지 궁금하여 통역사에게 물어보니엄마가 건강하셨으면 좋겠고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다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에게꼭 이루어 질 거야라고 하니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의 정확한 사정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많이 슬퍼 보였고 그러면서도 이내 밝은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며 내 마음은 더 아팠다. ‘말고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9일간의 수업 중 딱 한번 나와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친구의 소원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친구는 처음 수업에 와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말도 잘 하지 않아서 특별히 더 관심을 주었던 아이인데 소원이 무엇이냐고, 소원을 종이에 쓰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나한테 펜을 쥐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통역을 통해 상황을 알아보니 12살인 이 친구는 글을 못 쓴다고 한다. 통역사가 아이의 소원을 대신 써주어서 아이들이 간 이후에 소원이 무엇인지 물어보니까나는 12살인데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으며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글을 배우고 싶다. 그리고 훌륭한 경찰관이 되고 싶다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아이의 겉모습은 참 불량소년 같아서 사실 나의 잘못된 편견으로 인하여뭐 철딱서니 없는 꿈이겠지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러한 생각을 한 것이 너무나도 미안했다. 이 수업을 마친 후 저녁에 호텔에 돌아와서 일기를 쓰는데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글을 못 쓰는 친구는 왜 꿈이 경찰관이라고 했을까? 혹시 가정의 환경 속에서 부모님에게 많은 상처를 받아 경찰관이 되고 싶어한 것은 아닐까? 이 아이들은 하루하루 어떠한 삶을 살까?’ 여러 가지 생각 속에 나의 마음은 더욱 아프고 쓰라리기까지 했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도착하여 집으로 가는 도중, ‘과 글을 모르는 ‘12살 남자아이가 생각나면서 마음에서 드는 생각이 전 세계에 이러한 많은 아이들이 있을 텐데 그런 아이들에게 교육과 더불어 상처를 치유하고 무엇보다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리하여 그 아이들이 또 다른 아이들에게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귀한 일들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베트남 해외 교육 봉사단에 지원할 당시. 합격하리라고 생각도 못했었는데 20명 안에 당당히 합격한 이후 정말 많은 것들을 가지고 느꼈다. 팀원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만들었고, 다양한 일들을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며, 귀여운 아이들과 좋은 추억도 만들었고, 더불어 더욱 귀한 하나의 꿈을 꾸게 되었다는 것. 정말 이 추운 겨울, 이화봉사단을 통해 12일간의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한 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