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EWHA WOMANS UNIVERSITY이화여자대학교 EWHA WOMANS UNIVERSITY

해외봉사

2011 겨울 해외교육봉사_베트남_황지영

  • 작성일 : 2013-03-29
  • 조회수 : 606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나와 우리의 베트남

 

영문과 08학번 황지영

 

이화에서 4년을 보내면서 나름 여러 가지 경험을 해왔고, 사회로 나아가기 바로 직전에 나는 2011년 겨울 이화봉사단 해외교육봉사에 지원했다. 2009년 이화봉사단 국내교육봉사를 경험하고, 이화봉사단과의 2번째 만남이었다. 2년여가 지난 지금, 다시 이화봉사단의 지원서를 두드리고, 면접을 준비했던 이유는, 봉사 느낌이 좋아서였다. 봉사를 하기 전에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봉사를 하면서는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끝나고 나서는 아이들을 추억하며 시간을 보내는 그 따뜻한 느낌이 좋았다.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나에게만 시간을 투자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 혼자 열람실에 묻혀서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내가 필요한 각종 자격증을 위해서 남 생각보다는 내 생각에 열중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렇게 반년을 보내고 남들이 무엇을 했냐고 물을 때에 이런 이런 자격증이 있고, 점수가 이러하며, 이런 과목을 들었다는 말을 늘어놓는 나를 보면서,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몇 년간 만 있을 뿐 이 들어있지 않는 것이었다.

나의 인생에 남을, 타인을 들여놓기 위해서 지원한 이화봉사단이었고, 나의 부족한 경험이지만 19명의 팀원들과 함께 해외교육봉사를 준비하고, 실천하고, 마무리까지 하게 되었다. 준비를 하면서 처음에는 많아서 이름도 외우기 힘들었던 19명의 이화인, 그리고 선생님과 만나면서 점차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우리 힘으로는 어려운 선물들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처음 돌려보는 후원 전화를 긴장하며 돌리던 홍보팀, 몸은 서울에 있었지만, 마음은 베트남에 가 있어서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할까를 고심하던 기획팀, 어떤 물품이 아이들과 봉사단원들이 봉사를 할 때 필요할까를 생각하며 알파와 신촌의 마트를 동분서주하던 물품팀, 베트남에서 기억에 남는 사진을 찍고 우리의 사진을 감동적으로 만들어준 촬영팀, 우리들의 능력과 아이들이 받을 감동을 생각하며 공연을 짜고 머리 짜내며 안무를 생각해낸 공연팀, 우리의 고민과 애정이 묻어나는 회의를 하나하나 기록해준 기록, 손바닥만한 수첩을 들고 다니며 어려운 지각비 걷기도 알뜰살뜰 해낸 회계, 베트남에서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이리저리 정보도 알아보고 구급낭도 살뜰히 챙겨온 보건, 그리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존재감에 항상 고마운 부리더까지. 베트남에 오기 전까지 18번의 모임을 거치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더 알아가고, ‘베트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베트남 아이들과의 나눔이라는 하나의 꿈을 키워갔다. 우리 이화봉사단의 만남은 2011 10 5일 사회봉사센터 회의실에서 어색하게 시작되었지만, 3개월이라는 준비 기간을 지나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베트남으로 향하는 이화봉사단이 되어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서 우리는 드디어 1 3, 베트남으로 떠났다. 베트남으로 떠나는 날, 한국에는 하늘에서 조용히 눈이 내렸는데, 베트남에 도착하니 베트남의 열대 습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색하고 힘들었다. 첫날 서로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육체적 피로감과, 봉사활동의 앞으로의 진행에 대한 불안감은 첫날 프로그램을 마친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모습을 잡아갔고, 우리는 그 피로감과 답답함을 청년 정신으로 해결해나갔다. 짧은 활동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고, 여러 가지를 고치기 위해서 우리는 피곤하지만, 전체회의와 반별회의를 진행했다. 봉사의 감동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느낀 점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다른 단원들의 아이디어를 경청하고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는 단원들을 보면서, 내가 저 학년 때에 저런 생각과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차츰 소통해가는 우리와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눈빛으로통한다는 추상적인 말이 그냥 말 뿐이구나 라고 느꼈는데, 우리가 노력하고,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눈빛으로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부채를 만들고 나서 가위바위보를 하며 서로 부채를 부치는 놀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함께 하고, 옆의 아이가 또 같이 하고, 그리고 그 옆의 아이도 또 같이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에서 보낸 10 11일은 나를 생각하지 않고, 남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베트남에서 우리가 손수 만든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즐거워하며 감동해주었던 아이들, 봉사단원들, 그리고 선생님들을 생각하면서 보낸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내가 남을 생각하는 것처럼, 남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그 사람들이 나를 생각해준 덕택이 아니었을까. 베트남에서 이화봉사단의 이름으로 봉사하면서 호치민의 오토바이 수만큼이나 많은 따뜻한 것을 받았다. 세월은 흘러가고 이 따뜻한 기억들도 세월의 무게에 흐려지겠지만, 우리가 주고 받았던 그 마음만큼은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