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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

2011 여름 해외교육봉사_캄보디아_정다혜

  • 작성일 : 2013-03-29
  • 조회수 : 653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또 다른 이름, ‘네악크루

국제사무학과 08학번 정다혜

 

어꼰 쯔란”- 나도 모르게 오늘 가게에서 합장을 하며 이 말이 튀어나왔다. 캄보디아에서 돌아 온지 1주일이 지난 지금에도 내 무의식은 캄보디아에서의 1213일을 기억하는 걸까? 귀국 후 나는 줄곧 화장실을 사용 할 때면 물이 끊기면 어쩌지?’ 또는 변기가 안 내려가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하게 되고 또 어디를 가든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내가 이 바람을 맞아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7학기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을 때 나는 문득 지금껏 내 방학들을 학과 동아리를 위해 혹은 내 자신을 위해 썼는데 이번만큼은 남을 위해 봉사를 해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4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이화해외교육봉사단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합격소식을 알았을 때 너무나도 기뻤다. 그리고 61, 이름도 전공도 모르는 15명의 이화인이 사회봉사센터에 모였다. 서로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어색하기만 했던 우리의 첫 모임, 게다가 부족한 내가 리더가 되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잘 몰라 엉성하게 끝나버린 그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첫 모임을 가지고 우리는 다가오는 기말고사로 자주 모여 회의를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각 팀별로 일들이 잘 진행 되었고 우리는 방학 후 열심히 준비하자고 다짐하고 621일 다시 모였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준비기간은 단 2... 최대한 스케줄대로 진행하려고 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겨나서 여러모로 힘들었다. 그래도 팀원 모두 즐겁게 또 열심히 해서 준비를 잘 마칠 수 있었다.

대망의 D-DAY- 74, 우리 15명 이해봉은 인솔선생님(2)과 함께 걱정반 설렘반으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착했을 때에는 현지 시각으로 밤 1130분이 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프놈펜 인근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그 다음날 이화-스랑 초등학교로 출발 했다. 나는 그저 우리가 준비한 프로그램들로만 진행하면 될 거라는 생각에 나름 리더로서 자신 있었다. 하지만 학교 도착 후, 교장선생님과 유치부 원장선생님과의 첫 회의를 하고나서 ,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 이유는 유치부의 경우 우리가 준비해간 프로그램들 대부분을 이미 진행했었고 또 우리가 그들의 문화이해 부족으로 어떤 프로그램은 빼야만 했기 때문이다. 당장 그 다음날 프로그램 내용을 변경해야만 했고 회의도 해야 했지만 정말 습하고 더운 날씨에 우리 모두 무기력해짐은 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녁땐 아무것도 모르고 형광등을 켰다가 온 동네 벌레들이 모여들어 모기향을 사람이 취할 정도로 피워놓고 그렇게 이화-스랑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첫 수업 날, 개구리 울음 소리, 음악소리에 잠에서 일찍 깬 우리들이었지만 준비가 늦은 탓에 첫 수업부터 지각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 유치부 아이들과의 첫 만남, 너무 설렜고 떨렸다. 자그마한 손으로 자신의 명찰에 그림을 그리고 스티커를 붙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수업 준비부터 모든 게 미흡했던 첫날이었다. 그 후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 교육봉사를 하고 오후 시간엔 선생님들과 회의 하고 다음날 수업준비를 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들이었다. 하지만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정말 너무 날씨가 더워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몸에 땀이 흐르고 사람이 이렇게 무기력해질 수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우리들과 아이들은 점점 친해졌다. 아이들 이름도 열심히 외우고 하굣길마다 함께 버스타고 노래 부르고 이렇게 함께 활동함으로써 아이들과 가까워 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유치부 아이들은 내게 네악크루라고 부르며 스티커를 달라고 외쳤고 또 자기 그림을 봐달라고 외쳤다. 네악크루는 한국말로 여자선생님이란 뜻인데 마치 이화-스랑에선 네악크루가 또 다른 내 이름이 된 것만 같았다. 크메르어로 몇 단어들만 알고 있어서 아이들이 내게 했던 말 중 알아 듣는 말은 그 말뿐이었지만 우리들은 분명 소통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환한 미소였다. 나또한 아이들에게 미소로 답하고 웃어주며 또 사랑으로 안아주고 다가갔다.

정말 거짓말 안하고 매일 아침 아이들을 만나 수업하는 그 4시간이 정말 행복했다. 1주일이 지나고 부터는 나도 현지 선생님 같은 느낌이 들었고 아이들도 하나 둘 나에게 장난도 걸고 손도 잡으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의 봉사가 끝나갈 무렵 내가 장염에 걸리는 바람에 아이들 운동회에 많이 참여를 하지 못해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에게도 정말 많이 미안했다. 그래도 마지막 수업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고 준비기간 동안 열심히 준비했던 우리 친구들의 공연도 잘 마칠 수가 있었다. 마지막 수업, 아이들과의 작별 인사시간... 우리 유치부의 29명 아이들이 네악크루 다혜라고 외쳐주며 마지막 인사를 했던 그 순간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얘들아, 나도 너희와 1213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언제나 지금처럼 밝고 건강하게 자라줬음 좋겠다...

그리고 우리 15명의 이화봉사단 언니, 누나들을 잊지 말아줘~

 

약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함께한 14명의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교육봉사를 잘 준비할 수도 잘 진행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우리가 모여 조금씩 조율해 가며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 모두에게 감사한다. 처음엔 남을 위한 봉사라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나 자신을 더 성숙하게 만든 것 같아 내 삶에 있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우리에게 언제나 시스템의 중요성과 스스로 하는 법을 강조하시며 때론 엄마 같고 때론 친언니 같았던 설경옥 교수님, 그리고 16명의 여자와 함께 1213일을 함께하느라 고생하신 송규동 선생님께 참으로 감사드린다. 또 현지에서 바쁘신 와중에도 이화봉사단을 위해 프놈펜관광을 시켜주신 김길현 선교사님과 프로그램 준비에 미흡해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인도해주신 이철희 선교사님 그리고 바쁘신 데도 장염에 걸린 나를 병원에 데려가주시고 따뜻하게 보살펴 주신 김유선 선교사님 모두 감사며 그분들을 위해 늘 기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준 모두에게 고맙고 캄보디아에서 함께한 1213일 우리들의 여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고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사랑한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