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EWHA WOMANS UNIVERSITY이화여자대학교 EWHA WOMANS UNIVERSITY

해외봉사

2012 여름 해외교육봉사_캄보디아_박신혜

  • 작성일 : 2013-04-01
  • 조회수 : 753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2012 하계 이화해외교육봉사단 소감문

조소과 10학번 박신혜

           이화봉사단 면접일이 적힌 문자를 받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나는 어느새 캄보디아 봉사를 마치고 방학 막바지를 보내고 있다. 매 학기 초 채플시간이면 이화봉사단의 활동영상을 보곤 했고 내가 스무 명 남짓 한 이화인들 중 한 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워크샵을 다녀오고, 여러번의 회의와 만남을 가지면서 우리는 어떤 누구보다 돈독해졌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리더와 부리더가 앞에서 잘 이끌어주고 박현주선생님과 정익중교수님께서 뒤에서 잘 밀어주셨고, 단원들이 서로 배려한 덕에 별다른 문제 없이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각자 다른 전공의 여자 스무명이 몇 달동안 같이 한 가지 일을 해나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오히려 모두 여자였기 때문에 서로 이해해줄 수 있었고 각자 전공이 달랐기 때문에 각자의 분야에서 도움이 되고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솔직히 나는 메이데이 전시준비와 기간이 겹쳐서 매일의 회의시간이 오는 것이 무서웠고 피하고 싶었다. 해야할 것이 너무 많고 당장 작품이 완성되야 한다는 걱정으로 머릿속이 늘 가득했다. 그 땐 시험을 잘 못봐도 괜히 봉사단 모임을 탓하고 방학 때 여행도 못가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못하는 것을 투정하곤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프놈펜 공항에 도착했고, 마중나오신 주성아선생님을 보았지만 한국에서도 몇 번 뵈었기 때문인지 실감나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 시설도 좋았고 생각보다 덥지도 않아서 인지, 한국에서부터 늘 봐오던 봉사단원들과 함께여서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첫 교안 날, 나는 픽업 팀이었다. 삼십 분 남짓 버스로 이동을 하니 길이 점점 울퉁불퉁해지기 시작했고 시골 어느 마을에 버스가 정차했을 때 저 멀리서 우릴 향해 손흔들며 뛰어오던 아이들의 미소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센터로 이동하는 내내 수줍어 하는 아이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미리 공부해간 크메르어로 짧은 질문을 던지고 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거의 도착했을 즈음에 열었던 버스의 창문을 다 닫아주었는데, 그 것을 기억하고 아이들은 그 뒤로 도착할 때쯤이면 창문을 알아서 닫았다. 처음보는 아이들이었지만 정말 대견했다. 교안이 시작되었고 한국에서 수도없이 준비했던 것이라 별 문제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첫 날의 교안이 성공적이었건 아니었건 간에 후회가 없었고 늘 해오던 것보다 많이 모자라지 않게 잘 해낸 것 같았다. 명찰만들기를 통해 아이들의 이름을 익히고 사진을 찍으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숙소에서의 회의는 길어지고 구체적이어졌다. 더 완벽하게 아이들을 대하고 싶었던 모두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둘째 날 아이들이 자신만의 가방을 꾸미는 시간을 가졌다. 개인적으로 모방이 예술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모방의 능력은 예술적으로 훌륭한 감각이라고 생각을 한다. 내가 예시로 만들었던 가방을 잠깐 앞에서 보여줬는데 그 것을 단 시간안에 그대로 카피해 내는 아이들을 보았을 때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이들의 무한한 재능과 가능성을 발견해내고 싶었고 키워주고 싶었으며 이훌륭한 아이들이 미술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문득 과연 에코백의 손잡이를 꾸미는 아이들도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손잡이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를 보았고 또한 번 감동을 느꼈다. 그 어린 아이들이 비행기를 그리고 인어공주를 그릴 때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나는 이 날, 앞으로 한국에 가서도 이런 재능을 꺼내보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아이에게 내 재능을 꼭 나눠주리라고 결심을 했다.

           셋째 날은 숲 만들기를 하는데 물길을 그려주었더니 예상한 물고기가 아닌 꽃을 띄우고 배를 띄우고 인어공주를 올리던 아이들, 나무를 세웠더니 팅커벨을 달던 아이들의 창의력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보는 모루 철사, 수수깡 등의 재료들을 다양하게 응용하여 사용하고 장신구를 만들어 선생님들 손에, 목에 걸어주던 아이들의 예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넷 째날은 모빌을 만들고 자신의 꿈을 발표하는 교안이었다. 그들이 봐 오던 농부나 어부만 말하지 않을까 하는 우리의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선생님, 경찰, 파일럿, 통역사, 한국어선생님 등 꽤 다양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우리의 봉사활동이 큰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더 다양한 직업군을 소개해주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시간이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했다.

           마지막 날 대형 배너를 만들었다. 이 것은 센터의 환경미화를 위한 목적이 컸다. 주변에 많은 유흥가로부터 교육적인 공간임을 차별화 시키기 위함이었다. 마지막 날이 되니 아이들은 교안 룰에 대해 완벽히 적응을 하고 있었고 도착하면 손과 발을 씻고 교안이 끝나면 달란트스티커를 달라고 명찰을 내밀었으며, 간식을 먹으면 자기 주변을 알아서 치웠다. 서로에게 적응을 해가는 모습을 통해 이젠 끝인가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었다.

           마지막날 축제가 시작되고 아이들에게 페이스페인팅을 해주었다. 어느새 백여명의 볼이 우리가 그려준 그림으로 차기 시작했다. 사탕목걸이를 메고 자신이 만든 명찰과 가방을 들고 신나게 물건을 사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보람찼고 나 역시 행복했다. 그리고 끝날 때쯤 평소 표현이 많지 않았던 내 조의 아이가 집에서 들고 온 가위 열쇠고리를 손에 쥐어주었다. 새 것도 아니고 예쁜 것도 아니지만 마지막날이라고 선생님을 생각해 집에서부터 가져왔을 생각을 하니 정말 감동적이었고 울컥했다. 곧 우리가 준비한 공연과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 모두 끝나고 각자 아이들이 자신의 선생님에게 달려가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모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려서 인지, 어린 아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간식을 받아 웃으며 우리와 인사하고 집으로 향했다. 어쩌면 다행이지만 다시 못볼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짠해졌다. 축제뒷정리를 하고 숙소에 돌아와서까지 캄보디아에 있다는 사실에 실감이 나지 않았다.

           떠나기 전날 이화스랑초등학교에서 데이캠프를 했다. 센터의 청소년들이 선생님이 되고 우리는 보조봉사자의 입장이 되었다. 센터에서는 아이들만 같던 아이들이 주가 되어 또 다른 아이들을 케어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보다 더 어른스러워보였다. 그리고 존경스러웠다. 힘들텐데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큰 소리로 진행하고 아이들의 손을 씻겨주던 청소년들이 새롭게 보였다.

           봉사 일정이 끝났다. 마지막으로 시내관광을 하고 간소한 뒷풀이를 하고 짐을 싸면서까지도 캄보디아에 왔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지만 선교사님과 센터 직원분들이 공항에서 손흔들어 주시고 한번씩 안아주시는 순간에서야 이제 끝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는 지난 3개월간 백지로 시작해서 전공서적 두께의 교안노트를 만들어내었다. 우리는 이 교안노트와 함께  예쁜 아이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고, 관광을 통해 아름다운 캄보디아를 경험했고, 무엇보다 너무나도 소중한 18명을 얻었다. 이번 2주는 나에게 길지도 짧지도, 시원하지도 섭섭하지도 않았다. 무엇이라 표현하기 힘든 가슴벅찬 추억이고, 보람찼고 꿈 같다. 아직도 연습 중인 것 같고 곧 캄보디아로 떠나야할 것 같은 느낌이 매일 든다. 인천공항에 내려 각자 집으로 헤어질 때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다가 어느새 내가 방안에 18명 없이 홀로 있다는 사실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는 평생동안 이번 12 13일 동안의 단 1초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