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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

2012 여름 해외교육봉사_캄보디아_강하늘

  • 작성일 : 2013-04-01
  • 조회수 : 689
  • 작성자 : 사회봉사센터

2012 하계 이화 해외 교육 봉사, 그 뜨거웠던 기억

 

  중등특수교육학과 09학번 강하늘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지 삼일이 지났다. 우리가 뜨겁게 사랑했던 순간들이 벌써 낯설게 느껴지고 먼 옛날 일 같다. 그 이주 간의 기억을 말로 표현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참 좋았다.'는 한 마디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를 것 같기도 하다. 그 뜨거웠던 2주간의 기억을 짧은 글에 나마 조심스럽게 담아본다.

           첫날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느꼈던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생각난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벽에 붙어있는 도마뱀을 보며 ‘드디어 캄보디아에 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설렜었다. 당장 센터로 달려가고 싶었다. 한국에서 세달 동안 준비하면서 수없이 상상했던 센터였다. 어서 빨리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다음 날 하루정도 관광 일정이 있었지만 관광보다도 어서 아이들이 있는 센터로 가서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연습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고대하던 센터를 처음 방문했던 때를 기억한다. 우리 봉사단은 연두색 버스를 탔고, 모두 연두색 단체티를 입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 어색하고 수줍은 말투로 “쭘립 쑤어”하고 현지선생님들과 인사를 했다. 한국에서 상상해오던 센터가 눈앞에 있었을 때 감격스러웠다. ‘아이들이 손 씻는 곳은 여기구나, AB반은 이렇게 나뉘어져 있는 거구나.’ 상상 속에서 희미했던 모든 것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이들을 맞이하는 날이 왔다. 첫날 나는 픽업 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첫날 픽업 팀을 하게 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캄보디아에 가서 가장 처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시골로 더 시골로 들어갔다. 프놈펜 시내에서의 포장도로가 점점 비포장도로로 바뀌고, 깨끗한 건물들이 점점 판잣집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30분정도를 차를 타고 들어가니 드디어 아이들이 저 멀리서 보였다. 그 때 봉사자들 입에서 우리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아 드디어 아이들이구나!’ 아이들은 저 멀리서 모여 있다가 우리 버스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쪽으로 뛰어왔다. 캄보디아에 2주간 있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을 뽑으라면 바로 이 순간을 이야기 할 것이다. 그들의 옷차림과 표정에서 또 달려오는 모습에서 우리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을 처음 맞이하던 그 때 그 순간, 부끄럽게 인사하던 아이들의 첫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둘째 날은 내가 수업 총괄을 맡은 날이라 매우 긴장을 했다. 그 전날 회의를 하고 늦게 잤는데도 나도 모르게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아이들이 손 씻을 때 쓸 수건, 비누, 동요 CD, 준비물들을 미리 가서 준비해놓고 통역 분들이랑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를 마쳤는데도 계속 마음이 불안했다. 아이들은 늘 수업이 시작하기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전에 센터에 온다. 당시에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프로그램을 새로 짜야하고 체력도 많이 소모 되서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이 그 시간을 너무 좋아했고 봉사자들과 아이들과 가까워 질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날 아이들에게 ‘쎄쎄쎄’를 알려주며 놀았다. 그 때 앞니가 하나 없고 유난히 까맣고 작던 뻬아트라라는 남자아이가 내 손을 계속 잡으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직도 그 아이의 장난스럽게 웃음 띤 표정이 머릿속에 맴돈다. 통역 분들과 다른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부족하지만 수업을 잘 마쳤다. 아낌없이 도와주시던 통역 분들, 좋아해주던 아이들, 잘 따라와 준 후배 동기들, 좋은 코멘트로 교육의 질을 높여주신 현지 선생님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하루는 오전 반 아이들이 5명밖에 오지 않았다. 캄보디아에 수족구병이 유행이라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단체로 있는 곳에 잘 보내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픽업 팀 아이들은 본래 교육 기회도 적고 센터와 접근성도 적은 아이들이라 마음이 아팠다. 그 와 중에도 와준 5명의 아이들이 정말 사랑스럽고 고마웠다. 우리의 프로그램을 좋아해주고 봉사단원들과 노는 것을 즐거워하던 아이들이었기에 못 온 아이들이 더욱 안쓰러웠다. 이번 봉사를 하면서 픽업 팀 아이들에게 유독 정이 많이 갔다. 센터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부끄러워하고 미술작품을 만들 때도 더 서툰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동안 워낙에 교육기회가 적었기에 마지막 날 변화된 모습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던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돌아가더라도 계속 센터와 접촉하면서 그 잠재력을 깨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가 매일 같이 쓰던 아이들 별 관찰일지가 아이들이 센터의 케어를 받게 되는 좋은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일지를 쓰는 일이 힘들었지만 기쁘게 썼다. 우리는 짧게 왔다가지만, 우리의 기록을 통해서 아이들은 지속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드디어 마지막, 봉사단과 아이들 모두 기다리고 기다리던 버튼 마켓과 공연의 날이 왔다. 그 전날 버튼 마켓 세팅을 할 때 정말 눈물이 날만큼 감격스러웠다. 한국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같이 만나서 준비했던 것들이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 같아 정말 뿌듯했다. 열심히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후원받았던 물품들을 버튼 마켓에 팔기 위해 진열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포장도 다시 예쁘게 해왔다. 한국에서 할 때는 솔직히 이런 거 까지 해야 하는 지 불만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기쁘게 사갈 수 있도록 예쁘게 포장해 온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봉사의 과정에 모든 면에서 다른 봉사단원들의 조언과 충고가 서로에게 참 많은 도움이 되었고 많이 배우게 했다. 아이들이 그 동안 만든 작품들도 전시했다. 모빌도 달고 숲도 전시하고 대형배너도 달았다. 무대까지 설치하고 나니 센터가 축제의 장으로 변신했다. 그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준비한 5개의 교안을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축제의 날이 온 것이다.

           다음날 약 100여명의 아이들이 센터에 도착했다. 아이들에게 그동안 좋은 행동에 대해 받은 스티커를 버튼으로 바꾸어 주었다. 아이들은 그 버튼으로 자유롭게 물건을 샀다. 이화봉사단원들이 여러 후원 물품들을 그냥 나누어주는 식으로 전달하고 싶지 않다는 고민에서 고안한 버튼 마켓이 이렇게 결실을 맺고 있다는 것이 정말 뿌듯했다. 아이들은 그동안 그들이 한 좋은 행동들에 대한 보상으로 버튼을 받았고, 그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물건들을 사갔다. 아이들이 후원 물품들을 좋아해줘서 참 다행이었다. 드디어 아이들과 이화봉사단이 공연하는 순서가 왔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공연이라 긴장할 줄 알았는데 우리 아이들이 앞에 있어서 그런지 그냥 즐기는 기분으로 무대에 올라갔다. 무대 위에서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 둘 들어왔다. 춤을 추고 있는 데 내 담당아이가 막 아는 척을 해서 마음이 울컥했다. 우리 아이들도 공연을 했다. 우리가 오기 전에 열심히 준비한 전통 춤이라는 데 틀리는 모습마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공연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들이 우리에게 배운 올챙이 송과 율동을 무대에 나와서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전혀 따라하지도 못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무대까지 나와서 신나게 노래와 율동을 하게 되었다니 정말 뿌듯했다. 공연 까지 모두 마치고 헤어지는 순간이 왔다. 이별의 순간은 아무리 많이 상상하고 대비했어도 마음이 아팠다. 우리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가는 데 하염없이 손을 흔들었다. 우리 봉사단들은 눈물을 꾹 참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이화봉사단, 3달 동안 치열하게 준비했던 모든 것이 끝났다. 그저 3달 동안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해준 모든 이화봉사단원들에게 자랑스럽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 뒤에서 우리의 활동을 지지해주신 선생님, 교수님 외 많은 분들께도 감사를 전한다.